동네 아는 형의 자살

 쫀쫀한 학교 이야기 

얼굴만 알았던 그 형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 나라 역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정말 많을 거라고 본다.

최근에 발표가 된 통계 자료만 봐도 10대들의 자살 비율이 생각 이상으로 높아서 조금 놀라긴 했다. 나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어린 친구들이 자살하는 게 조금 이해가 안 가긴 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시기 아닌가. 당시에는 절대 모르겠지만 30대만 넘어가도 10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10대 시절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성실하게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교를 갔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 역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보낸 터라 지금까지도 그저 부모님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당시 어머니가 나를 제대로 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랬었지.

나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별로 살아 보지도 않았던 삶이 참 힘들고 고단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시골에서 10대 초반 시절을 지내왔기에 이런 저런 사소한 추억들이 많다. 오히려 10대 중반에 도시로 들어 오면서 이웃들의 소식을 잘 못 듣게 되었는데 시골은 소문이 굉장히 빨리 퍼지고 사건 사고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도 정말 많다. 

그 자살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자살을 한 당사자가 나의 친형의 같은 반 친구였다. 

형 말을 들어 보면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같은 반이었기에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는 사이였고 형은 실제로 장례식장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어린 자녀가 죽은 집안의 장례식은 그 분위기를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궁금했다.

나도 그 형은 등학교 하면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 매일 그 형 그리고 형의 여자 친구를 보면서 등교했다. 그 형이 사는 집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바로 근처였는데 그 형이 다니던 중학교는 반대 방향이었기에 등하교 하면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구조 였다. 

내 기억이긴 하지만 형도 여자 친구인 그 누나도 무척이나 잘 생기고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마다 항상 같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어린 나이지만 그게 참 인상깊었다. 물론 그 나이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다 멋있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저렇게 사이 좋게 매일 같이 등하교를 하는 모습이 나름 부러웠다. 

그런데 

왜 자살을 한 걸까.

역시 시골이어서 소문이 빠르게 퍼지긴 했다. 

알고 보니 나이가 조금 많았던 연상의 여자 친구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 했고 죽을 만큼 힘들었던 그 형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목을 매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내가 자주 청소하러 가던 강당 건물 뒤에 외롭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소나무에서...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건 형의 시신을 처리하고 나서도 그 형을 매달던 노끈은 몇 달이 지나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는 거다. 마치 그 자리에서 형이 죽었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듯이 말이다. 

나는 형의 시신을 본 적도 없고 볼 마음도 없었지만 그 노끈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기억도 난다.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나 관리자 분들이 얼마나 무신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금이라면 아마 상상도 못 하겠지. 

아마 집 근처 장소를 물색하다가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일을 벌인 거 같은데 그 당시에도 이별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그 결단이 묘하게 신기했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 여자 친구와의 이별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은근 있었던 걸 보면 오히려 나는 그 안에서 사랑의 놀라운 힘에 압도가 되기도 했었다. 

죽음까지 가게 만드는 사랑의 힘이라니.

이게 크게 놀랍지가 않은 게 당시에는 중간 고사 성적이 하락했다고 자살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수능만 끝나도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수능 직후에 뉴스에도 많이 나왔다. 내 주변에서도 친구의 오빠가 고1 시절 중간고사 성적이 하락했다고 학교 옥상에서 뛰어 내린 일도 있었는데 다행히 크게 안 다치고 가벼운 부상 정도로 마무리 되었다고 들어서 가슴을 쓸어 내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런 하찮은 일로 자살을 할 수가 있나.

라고 생각한다면 역시나 꼰대라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 

나도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사소한 일이 인생을 결정할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반에서 누군가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지구 멸망보다 더한 충격이 가해지던 시기였고 그래서 누군가한테 미움을 받거나 심지어 선생님한테 의도적으로 미움을 받으면 죽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기는 게 당연하다. 

나는 자주 없었지만 그런 면에서 힘들어하던 친구들도 내 주변에서는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을과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고 특히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시기다. 그래도 어른들은 회사가 뭐 같으면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찾으면 되지만 학생 입장에서 학교를 마음대로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그래서 보통은 입을 다물고 참다가 결국 터지기도 한다. 

심지어 어른들도 회사 안에서 따돌림을 당하면 자살을 택하는 분들도 은근 많고 내 주변에서도 그런 분들이 의외로 있어서 의외였던 기억도 있다.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일을 할 확률이 높은데 길고 긴 인생에서 보면 회사라는 것도 결국 스치듯 지나가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길 바란다. 

나 역시 학교 안에서 교장의 미움을 받아 죽을 만큼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친형이 교통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으면서 삶에 대한 혼란이 더 가중되던 시기였다. 세상이 무너지는 시기에 뜬금없이 학교 교장까지 나를 괴롭혔다 보니 더 이상 살기가 싫을 정도로 괴로웠다.

아무래도 시골이어서 교장이 학생 하나하나를 관리하는 독특한 사립 중학교 시스템이었는데 자기 입으로 조직 폭력배 출신이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린 나는 당연히 버티지 못 했다. 

애초에 10대 초반 중학생이 조폭 출신 교장과 맞서는 거 자체가 황당한 일이었을 테고 교장 역시 내가 전학을 간 이후에 속이 다 시원하고 동네 방네 소문을 내시고 다녔던 거 보면 생각보다 속이 좁고 얄팍한 인간이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히 나에게는 나를 받아줄 다른 도시의 이모가 계셨고 학교를 옮기면서 나는 차차 나아지긴 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가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나 역시 나의 모든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맛 보았기 때문에 이를 해소할 창구가 없으면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자 아자 화이팅 하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은 드라마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 하면 역시나 그런 사람과는 평생 소통하기가 힘들다. 

나도 힘든 시절을 떠올려 보면 어머니와의 대화가 아니었다면 나 역시 언제든지 세상과 이별을 했을 거라는 걸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당시 어머니와 이례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나는 특히나 보름 동안이나 학교 등교를 거부했던 터라 어머니와 대화를 할 시간도 여유도 많았다.

어머니는 심리 상담사는 아니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는 보다 넓은 선택과 길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려 주셨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도 엄마 역할을 처음이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혜롭게 그 누구보다 대처를 잘 한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아마 그 형도 너무나 괴로웠으나 이를 해소할 만한 대화 상대가 전혀 없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들이 대화를 요청하면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느끼는 건데 사실은 들어만 줘도 어느 정도 후련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후배들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해결책을 제시해 줘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고민에 다시 말을 얹을 필요는 없다.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족하다. 

애초에 내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가벼운 문제로 사람이 고민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음을 힘들 정도로 고민을 하는 문제는 가볍게 대화로 해결될 리가 만무하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누군가가 힘들고 괴로워한다면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 해야 겠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거의 다 반대로 하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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