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정말 가난해
쫀쫀한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에 듣게 된 엄마의 진심
나는 엄마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도 아니 사춘기 이후부터는 압도적으로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안 계신 건 아니다. 아버지도 멀쩡히 살아 계시지만 무언가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부터는 아버지와 대화 자체를 잘 안 하게 되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왜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힘든지 고민을 하고 그로 인해 심적으로는 힘들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나와 안 맞는 사람과 무리하게 이어지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간과 노력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며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애초에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다.
그래도
나에게는 엄마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마음 터 놓을 수 있는 건 굉장한 복이다.
두 분 다 그렇다면 전생에 분명 나라를 구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엄마도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성격적으로 엄마와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나이 들면서 그런 걸 더 강하게 느끼는 편이다. 외모는 아버지와 닮았지만 가치관이나 성격은 엄마와 비슷해서 우리 둘은 자주 싸우고 또 그만큼 서로 의지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꽤나 자세하게 기억한다.
순간 기억력은 좋으나 오래된 기억은 그다지 안 좋은 편임에도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고 내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선택을 할 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아니 사실상 엄마가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국 대회가 아닌 도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거나 학교 대표로 대회를 나가는 정도였다. 시골에 있는 학교였기에 소질이 있다고 보기도 애매한 수준이었는데 그래도 학년에서는 가장 그림을 잘 그렸기에 그림에 열정적인 선생님의 지도 아래 매일 방과 후 남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방과후 활동같은 게 전혀 없던 시절이어서 체육과 미술을 제외하고는 남아서 특별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마저도 거의 다 학교 명성을 높이기 위한 대회 준비의 성격이 강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 두 시간 정도 늦게 하교하다 보니 하루는 엄마가 왜 이렇게 집에 늦게 오냐고 물었던 게 대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선생님의 권유 혹은 강압으로 매일 남아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부득이하게 늦어졌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듣는 엄마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엄마 역시 내가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림을 전문적으로 하는 걸 원하지는 않았기에 그러하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엄마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나 방바닥을 걸레로 쓸며
화가는 가난해라고 중얼 거렸다.
엄마 성격상 내가 들으라고 한 의도도 분명 있을 테지만 나에게 직접 대놓고 너가 화가가 되면 가난해질 거야 같은 저주의 말도 아니었기에 더 기억에 남았다. 오히려 대놓고 뭐라고 했다면 어린 마음에 반항이라도 했겠지만 무언가 체념하듯이 토해내는 엄마의 말이 오히려 더 무겁게 귀를 때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직 9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가난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았겠나.
물론 그 당시에도 우리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던 건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경제적인 삶의 수준이 아이들마다 각자 다르다는 걸 신고 다니는 운동화와 옷 그리고 들고 다니는 물품을 통해서 바로 알 수 있다. 특히 유독 학교를 꾀죄죄한 몰골로 오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런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부모가 아닌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인데 대부분은 부모가 도시로 일을 하러 나가서 시골에서 같이 살지 못하거나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돌보기에는 기력도 없고 지친 상태이기에 아이들의 꼬라지는 겉으로 보기에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제발 자기 전에 씻고 양치라도 하라고 타이르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가난은 어린 나에게도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무의식적인 독백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 엄마의 진심 아니었을까.
종교 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는 항상 돈이 부족했고 엄마가 보기에 종교인이나 예술인이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어 보였을 거다. 실제로도 종교인이나 예술가나 상위 1% 정도가 아니면 돈을 거의 제대로 벌지 못 하는 게 사실이다.
내 주변만 봐도 예술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와중에 어린 아들이 돈도 안 될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답답할 만도 하다.
물론 나도 어린 나이임에도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편이긴 해서 학교 대표로 이런 저런 대회를 나가고 했으나 그림을 진지하게 진로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림으로 성공하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지 어린 나이에도 잘 알고 있었다기 보다는 그냥 남들보다 잘 하니깐 그리고 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깐 남아서 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랑같이 들리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나는 그림 만이 아니라 음악과 글에도 소질이 있었다.
소위 체육을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다 두각을 드러내긴 했는데 살다 보니 글이 그나마 전반적으로 돈을 벌어 먹고 살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림은 정말 예술의 경지가 아니라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이야 안다고 치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재미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의기소침해지긴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아주 신나서 하지는 않았다. 특히 학교 대표로 나간 대회에서 시간이 남아 다른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고 아주 큰 충격을 받은 뒤로는 그림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된
그 아이들의 그림이 아주 훌륭해서가 아니다.
마치 같은 학원에서 배운 것처럼 그 아이들의 그림은 거의 다 비슷하고 놀라울 정도로 동일한 붓 터치를 보이고 있었다. 쌓아 놓고 보면 누가 누구의 그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 마디로 전문가의 손길 아래에서 배운 그 솜씨는 배우면 배울 수 있겠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예술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다.
스타일이 하나같이 다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걸 해서 뭐하나.
이런 개성 없는 그림들이 상을 받는 게 그림이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그림으로 대학을 가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할 만 한 게 과연 뭐가 있을까.
뭐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이 정도로 모두 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걸 보고 조금 질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재미없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예술은 특별한 천재가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취미로는 즐길 수 있으나 애매한 재능과 능력으로 전문가의 길로 들어 섰다가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다른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을 살면서 정말 많이 보았다. 부모 입장에서야 자식에게 뭐라도 시키고 싶어서 재능이 별로 없다고 해도 하고 싶다면 다 지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당시 나는 그런 상황 자체게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안은 객관적으로 봐도 예술에 돈을 쓰며 나를 지원해줄 만한 여력이 없었다.
특히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
심지어 어린 시절이라서 내 돈이 아니라 부모의 돈이 압도적으로 많이 들어간다. 물론 돈이 썩어 나갈 정도라면 상관없지만 본인의 꿈을 위해서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일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그런 생각이 나름 확고했다.
그래
화가는 가난하다.
모든 예술가들은 가난하다.
가난해도 버틸 수 있고 재능이 없어도 이거 안 되면 죽을 사람들은 그래도 예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독백은 나의 마음을 대변했기에 나의 가슴을 울렸다.
나도 어느 정도는 엄마의 생각에 동의를 했다.
엄마는 아마 누구보다 나를 잘 알지 않았을까.
이게 돈이 안 된다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으리라는 걸.
그 당시에는 엄마를 조금 원망하기도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게 현실을 잘 읽고 나를 잘 아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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