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으로 일했던 나의 어머니

 존쫀한 엄마 이야기 

여성 교도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어머니 


나는 사춘기로 방황하던 시절 오히려 엄마와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누었다.

조금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을 하나의 인격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를 보호해주는 지지자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극심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어머니와 대화를 많이 하면서 엄마도 결국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어린 시절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질 않았기에 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

엄마도 사람이다. 

그걸 나만 모르고 있었... 아니 무시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사춘기도 있었겠지만 당시 친 형의 죽음과 다니던 학교에서의 부적응 문제로 마음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루 아침에 형은 교통 사고로 주검이 되어 돌아 왔고, 다니던 학교에서는 학교의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장까지 나서서 나를 짓밟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사춘기를 겪은 게 아니라 그 당시 나의 주변 환경이 극악무도한 수준이었는데 어린 시절에는 이걸 그저 사춘기로 치부하고 넘겨야 할 통과 의례 정도로 생각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웠던 터라 그렇게 착각한 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엄마와 누구보다 대화를 많이 했고 중학교 시절 학교를 보름이나 가지 않으면서 할 게 딱히 없어서 엄마와 산책을 나가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서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교도관으로 일했던 경험을 풀어 주었다.

사실 

엄마가 교도관으로 일했다는 것도 그 전까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목사의 아내로 임하면서 교도관으로 일했다는 걸 교인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그래도 나한테 이야기한 건 내가 너무 심하게 방황을 하다 보니 그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는 인간에 대해 그리고 부모라는 일에 대해서 엄마도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엄마는 당연히 여자 교도소에서만 일했는데 듣기로는 청주와 대구에서 일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몇 년 일하지 않고 그만두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자신의 동기들은 지금 다 교도관장이 되었을 만큼 경력이 오래 되었다는데 아마 더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 분들도 다들 은퇴하셨고 누군가는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사실 엄마는 고등학교를 1학년 다니다가 자퇴한 터라 변변한 직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그 당시 교도관은 시험만 보면 들어갈 수 있었고 별달리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엄마는 원래 암기력이 좋았어서 단 번에 시험을 통과하여 교도관이 될 수 있었다. 그 당시 공무원의 지위는 지금보다 훨씬 안 좋아서 월급도 형편 없었고 복지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위에서 시키는 일도 해야 하는 동시에 무시무시한 재소자들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 

그래도 5년 정도를 버티다가 결국은 엄마도 그만두었는데 그 당시 경험을 지금까지도 종종 이야기하시는 거 보면 엄마 입장에서도 기억에 남는 직장 생활이긴 하셨나 보다. 그 이후에는 이모와 함께 백화점에서 이불도 팔고 이런 저런 일을 하시다가 결국 아빠와 결혼하시고 교회 운영에 동참하신 건데 나는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서 왜 안정적인 교도관 일을 그만두신 건지 물어 보았다.

생각보다 대답이 간단했다. 

교도관 자체가 밤낮이 없는 근무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살다가는 몸이 다 망가질 거 같아서 그만두셨다고 한다. 나도 공군에 입대해서 경비병으로 복무하면서 밤낮이 없는 생활을 경험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낮과 밤이 불규칙하게 바뀌는 건 아무리 젊은 신체라고 해도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이후에 승무원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밤과 낮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승무원을 그만둔 이유 중 가장 큰 게 바로 이 체력적인 한계였는데 엄마 역시 그러했다고 해서 다소 놀랍기는 했다. 아마 엄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면 아무래도 승무원을 하시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교도관 보다는 승무원이 더 재미있다. 

그 당시에도 여성이 교도관으로 일하면 그렇게까지 대우를 받는 직업이 아니었을 텐데 그런 직업을 5년이나 한 우리 엄마도 대단하고 버틴 게 신기할 정도다. 엄마가 해 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 바로 사기꾼들에 대한 일화였다. 사기꾼들은 교도관들도 저 사람이 사기 범죄로 들어온 걸 알고 있으나 결국 교도관들도 나중에 사기꾼에게 당해서 돈을 잃는다는 이야기였다. 

분명히 이 사람이 사기칠 가능성이 100% 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한다는 건데 이런 거 보면 남을 속이는 것도 나쁜 의미에서는 재능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나라는 유독 사기꾼들이 많은데 사람의 신의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은 건 그만큼 우리 나라에 사람이 유독 많다는 반증 아닐까. 

엄마의 교도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제대로 직장인의 애환을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 일화들을 통해서 엄마라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그저 나의 어머니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직장 생활도 하고 젊은 시절도 있었던 사람으로 다가온 게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와 나의 관계를 보면 그리고 아빠와 나의 관계를 보면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해도 어린 시절부터 자식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열쇠구나 싶다. 어차피 해법은 없고 방법도 없다. 그저 어린 자식이지만 진지하게 다루고 진심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만 대화를 하고 아버지와는 대화가 일절 없었는데 나중에 나이가 먹어서도 아버지와는 지금까지도 어색하다. 

그에 반해 엄마는 친구 이상으로 신뢰가 가능한 존재다.

어찌 보면 부모 중에 한 사람이라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축복 아닐까. 조금 어린 시절만 해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색한 게 한스러웠는데 이제는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참 복 받은 사람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네이버 블로그 저품질의 지옥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진 선생님

제주 항공 참사 개인적인 의문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