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반찬 오이와 장

 쫀쫀한 엄마 이야기 

그 시절 엄마와 나의 행복한 시간 


나는 지금도 야채와 과일을 사랑한다. 

소화 기관이 약한 편이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나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거나 피부에 뭐가 나서 다시는 안 먹게 된다. 이렇게까지 예민한 게 좋은 건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이 정도로 민감한 내 육체가 가끔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소화가 잘 되는 야채와 과일 먹는 걸 굉장히 즐거워했다. 

어른들도 놀라월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마나 시골이냐 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조그만 구멍 가게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특히 아주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 나가본 기억이 전혀 없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도시로 나갈 만한 곳에 살고 있지도 않았기에 그러하다. 

우리 집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가난했다. 

부모님이

종교를 업으로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시골에서 살지만 농사를 짓는 건 또 아니었다. 그저 텃밭에서 당장 먹을 만한 야채나 과일들만 어렵사리 수확하고는 했었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그나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엄마가 그런 일을 도맡아 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긴 했으나 전문 농사꾼처럼 작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토마토

오이

상추

같은 심기만 해도 자라는 기본적인 야채나 과일만 심으셨다. 엄마도 살림은 처음이기에 그러는 게 당연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당시에는 종교 일로 인한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은 좋으나 경제적인 능력은 전무한 사람인데 아버지의 감언이설에 속아 직장까지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왔는데 우리 집이나 살림살이나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이었다. 나는 심지어 유치원을 다니기 전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소위 말해 똥통에 빠진 적이 있을 정도로 집안의 환경이 열악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다 그렇게 살았다. 

그래도 시골 사람들이어서 우리 가족에게 김치나 기본적인 작물들이나 과일은 나누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이사를 온 우리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었고 기본적인 생필품들은 우리가 알아서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린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먹이긴 해야 하고 매일 음식을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으니 엄마와 나는 거의 매일 점심마다 밥과 김치 정도를 놓고 끼니를 해결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날이 좋으면 집 앞마당 텃밭에서 오이와 누구한테 얻은 된장 혹은 고추장과 함께 간단한 점심 식사를 했다. 

지금처럼 

과자와 군것질거리가 흔한 시절도 아니었다.

아니 뭐 도시에서는 흔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시골에서는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과자를 많이 먹은 기억조차 별로 없다. 원래 잘 안 먹기도 했으나 달디단 무언가를 지금도 잘 안 즐기는 건 어린 시절 영향도 크다. 

그래도

참 행복했다.

밥과 

반찬이라고는 방금 씻어서 먹기 좋게 썰어온 오이와 장 뿐이었지만.

나는 그걸 참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오이나 생으로 먹는 야채를 여전히 좋아한다. 상추나 쌈 같은 것도 잘 먹고 김치도 누구보다 즐기는 편이다. 아마 분명히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 어렵지 않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먹을 게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영양학적으로 부족하지도 않았다. 엄마도 분명히 자식들에게 더 좋은 걸 주려고 노력을 하고 싶었을 테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나는 그나마 먹는 거에 있어서는 전혀 까다로운 편은 아니었는데 그건 지금도 비슷하다. 아주 맛 없는 게 아니면 군소리없이 먹는 편이다. 

참 가난한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에 엄마와 함께 먹은 생오이가 그렇게 아삭아삭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애정과 노고와 고단함이 담긴 오이의 맛을 지금도 잊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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