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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초의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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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요람기  나는 왜 동전을 훔치게 되었나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른다. 처음이자 마지막 도둑질이기에 기억에는 나름 생생한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벌인 건지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간다. 뭐에 씌었던 걸까. 누가 나를 종용한 걸까. 아니면 내 안에 그런 기질이 원래부터 있었던 걸까. 왜 그랬던 걸까. 그 당시로 돌아가서 나에게 묻고 싶다. 왜 훔친 거니?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바야흐로  벌써 오래전 일이다.  아마도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시절이라고 기억이 나는데 숙제를 제대로 했다거나 공부를 한 기억이 없어서 아마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일이었을 거다. 그 날은 아마도 휴일이었다. 학교에 가지 않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형과 함께 등교를 했는데 그 날은 등교를 한 기억이 없다.  어른들은 일을 보러 낮에 잠깐 나가시고 나는 그날도 마을의 친구들과 마을 어귀에서 놀게 되었다. 그 당시 하루 일과는 뭐 그런 식이었다. 워낙 시골이었던 터라 학원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딱히 놀 만한거리들이 많은 시절도 아니었다.  그저 모여서 마을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 직전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까지 노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학원과 집을 오간다고 하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고 그 당시에는 다 그렇게 놀았다. 그 날도 아무 생각없이 친구들과 놀다가 갑자기 누군가 말을 꺼낸 듯하다. 군것질 거리를 먹고 싶다고 말이다.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은 꿈도 못 꾸고 마트가 흔한 시절도 아니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는 그 흔한 슈퍼도 없어서 가게에 가려면 읍내로 나가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소규모로 운영하는 그야말로 과자 몇 개와 소주나 막걸리 정도를 파는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구멍 가게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가게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돈이 없었다. 그때 나는 떠올렸다. 부모님께...

유일한 반찬 오이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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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엄마 이야기  그 시절 엄마와 나의 행복한 시간  나는 지금도 야채와 과일을 사랑한다.  소화 기관이 약한 편이어서 나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나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바로 탈이 나거나 피부에 뭐가 나서 다시는 안 먹게 된다. 이렇게까지 예민한 게 좋은 건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이 정도로 민감한 내 육체가 가끔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런 사정으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소화가 잘 되는 야채와 과일 먹는 걸 굉장히 즐거워했다.  어른들도 놀라월 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마나 시골이냐 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조그만 구멍 가게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특히 아주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 나가본 기억이 전혀 없다.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도시로 나갈 만한 곳에 살고 있지도 않았기에 그러하다.  우리 집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가난했다.  부모님이 종교를 업으로 하며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시골에서 살지만 농사를 짓는 건 또 아니었다. 그저 텃밭에서 당장 먹을 만한 야채나 과일들만 어렵사리 수확하고는 했었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그나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엄마가 그런 일을 도맡아 했다. 엄마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긴 했으나 전문 농사꾼처럼 작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토마토 오이 상추 같은 심기만 해도 자라는 기본적인 야채나 과일만 심으셨다. 엄마도 살림은 처음이기에 그러는 게 당연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당시에는 종교 일로 인한 수익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살림을 도대체 어떻게 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다.  우리 아버지는 사람은 좋으나 경제적인 능력은 전무한 사람인데 아버지의 감언이설에 속아 직장까지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왔는데 우리 집이나 살림살이나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이었다. 나는 심지어 유치원을 다니기 전에 화장...

같은 반 지적 장애인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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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학교 이야기  외모와 기럭지 모두 완벽한데 지능이 낮았던 그 친구  나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학교 상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라떼를 말해 보자면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라고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지금도 우리 나라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내가 판단 내릴 문제는 아닌데 그래도 안정화가 되었다는 거 자체가 반갑다.  내가 학교를 다닐 시절에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에 변화를 그대로 맞이해야 했고 그런 연유로 독특한 경험을 할 일도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지적 장애인과 같은 반에서 무려 2년 가까이 같이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는 시골의 중학교를 다녔기에 그 지역에는 당연하게도 특수 학교 이런 게 없었다. 도시만 해도 지적 장애나 자폐성 장애가 심한 경우 특수 학교를 가는 게 당연하지만 시골에는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당시는 지적 장애는 있어도 자폐성 장애는 주변에 별로 없었는데 그 친구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지적 장애가 맞기는 한 거 같다. 이 두 개를 구분하는 기준이 바로 사회성이라는데 그 아이는 확실히 사회성은 있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과 생각보다는 잘 어울려 놀긴 했다. 그걸  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긴 하지만 말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친구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은 다른 어떠한 친구보다 잔상에 오래 남는다. 그만큼 독특한 친구였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본 적이 없는 친구여서 그러했던 듯하다. 오히려 초등학교 시절에는 특수 학교는 없어도 학교 안에 특수 학급이 있어서 그런 아이들을 따로 모아서 특별 수업을 한 터라 학교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는 무슨 연유...

흙을 맛있게 먹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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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요람기 그 때에는 흙이 그렇게 맛있었다  나는 흙을 많이 먹었다 고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기억이 생생하게 나기도 한다.  내가 흙을 먹던 그 기억 말이다.  심지어 맛있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아니 애초에 맛이 없었다면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흙을 먹지는 않았을 테니 납득이 가긴 한다. 정확히 무슨 맛이었는지도 대충 기억이 나는 게 신기할 정도로 흙을 먹은 기억들이 생생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흙이냐 먹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주로 먹은 흙은 흙먼지같은 느낌의 고운 흙이었다. 진흙같은 느낌도 아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유치원 시절 봄이었다. 마른 흙으로 인해서 바람만 불어도 흙먼지가 사방에서 날아다니던 건조한 날씨.  지금은  학교마다 트랙을 깔고 잔디를 깔면서 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가 날리는 일이 과거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건조한 날 운동장은 흙먼지 그 자체였고 비가 내리면 진흙탕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서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운동장에서 축구라도 하고 들어오면 운동화가 난리도 아니었다. 흙을 먹었지만 진흙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먼지같은 흙먼지는 손으로 퍼서 먹었었다. 손으로 살살 골라서 고운 흙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혀로 핥으면서 맛을 느끼고 음미했다. 말 그대로 흙의 맛을 음미했다고 보는 게 맞다. 위생을 생각하자면 더럽고 지저분한 게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  신기한 건 학교 안에서는 분명 누군가의 지도와 감시 아래 있었을 텐데 흙을 먹는다고 선생님에게 혼난 기억은 한 번도 없다. 단지  내가 흙을 먹는 모습을 보고 기겁한 엄마에게 많이 혼났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혼이 나면 더 몰래 한다고 그 뒤부터는 혼자서 몰래 흙을 먹었는데 어느 순간 나 역시 더 이상 흙을 먹지는 않게 되었고 그 기억을 아예...

화가는 정말 가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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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에 듣게 된 엄마의 진심  나는 엄마와 사이가 굉장히 좋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도 아니 사춘기 이후부터는 압도적으로 엄마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안 계신 건 아니다. 아버지도 멀쩡히 살아 계시지만 무언가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부터는 아버지와 대화 자체를 잘 안 하게 되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왜 아버지와 대화를 하기 힘든지 고민을 하고 그로 인해 심적으로는 힘들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나와 안 맞는 사람과 무리하게 이어지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간과 노력 자체가 굉장히 피곤한 일이며 의미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애초에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거다.  그래도  나에게는 엄마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마음 터 놓을 수 있는 건 굉장한 복이다.  두 분 다 그렇다면 전생에 분명 나라를 구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엄마도 어린 시절부터 아주 좋아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나는 성격적으로 엄마와 거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나이 들면서 그런 걸 더 강하게 느끼는 편이다. 외모는 아버지와 닮았지만 가치관이나 성격은 엄마와 비슷해서 우리 둘은 자주 싸우고 또 그만큼 서로 의지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엄마와의 대화를 꽤나 자세하게 기억한다.  순간 기억력은 좋으나 오래된 기억은 그다지 안 좋은 편임에도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고 내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서 선택을 할 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아니 사실상 엄마가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국 대회가 아닌 도 대회...

동네 아는 형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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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학교 이야기  얼굴만 알았던 그 형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 나라 역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정말 많을 거라고 본다. 최근에 발표가 된 통계 자료만 봐도 10대들의 자살 비율이 생각 이상으로 높아서 조금 놀라긴 했다. 나는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어린 친구들이 자살하는 게 조금 이해가 안 가긴 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시기 아닌가. 당시에는 절대 모르겠지만 30대만 넘어가도 10대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의 10대 시절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성실하게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교를 갔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나 역시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보낸 터라 지금까지도 그저 부모님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당시 어머니가 나를 제대로 잡아 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그랬었지. 나도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별로 살아 보지도 않았던 삶이 참 힘들고 고단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시골에서 10대 초반 시절을 지내왔기에 이런 저런 사소한 추억들이 많다. 오히려 10대 중반에 도시로 들어 오면서 이웃들의 소식을 잘 못 듣게 되었는데 시골은 소문이 굉장히 빨리 퍼지고 사건 사고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는 사람인 경우도 정말 많다.  그 자살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자살을 한 당사자가 나의 친형의 같은 반 친구였다.  형 말을 들어 보면 자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같은 반이었기에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내는 사이였고 형은 실제로 장례식장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어린 자녀가 죽은 집안의 장례식은 그 분위기를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그림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사실 궁금했다. 나도 그 형은 등학교 하면서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 매일 그 형 그리고 형...

드디어 윤석열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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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세상 이야기  기다리던 현직 대통령 체포  이제 드디어 편하게 잠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아마도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의 계엄령이 무조건 성공하고 자신이 이전 대한민국 역사의 독재자들처럼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본다.  그래서 그의 변명이 너무 어이가 없을 정도다.  누군가는 계엄이 너무 허술했다고 하지만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허술하게 준비했을 리 만무하다. 본인 스스로 내란을 준비하는 거라면 그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했을 게 틀림 없어서 계엄이 마치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장난같은 일이라고 호도하는 사람들이나 언론들은 순전히 멍멍이 소리를 하고 있을 따름이다.  정말이지 홧김에 했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바보라고 인정하는 것고 다를 바 없다.  본인도 분명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을 텐데 그에게 부족한 점이라면 바로 현실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시민의 말처럼 인지 장애가 있는 건 아닌지 검사를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초에 모든 국민들을 적으로 돌리고 자신 만의 왕국을 만들려고 내란을 한 건데 이걸 두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라는 식으로 몰아가는 국민의 힘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면서 길거리마다 대형 현수막에서 이재명은 안 된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윤석열도 대통령 했는데 이재명이 하면 안 되는 이유가 과연 무어란 말인가. 이 질문에 국민의 힘조차 대답하기 힘들어 보인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아무리 야당 후보가 강력해도 이런 식으로 특정인은 대통령을 절대 하면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는데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으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걸 반대한다면 나는 한 번 이재명도 대통령을 시켜보고 싶기는 하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닌 거 같다. 이 정도로 국민의 힘 의원들이 단합을...

아이폰 17 에어 과연 사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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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IT 이야기  9월에 나올 아이폰 에어에 대한 잡담  아마도 9월 말에 한국에도 나오게 될 아이폰 17.  그 중에서도 이번에 새로 나오게 될 에어에 대한 관심이 나를 포함 전세적으로 지대하다. 잘 안 팔리는 미니와 플러스 기종이 마침내(?) 단종되고 결국 에어로 가는 건데 아이패드와 비슷한 흐름으로 갈 거라는 게 너무 보이긴 해서 놀랍지는 않다. 어차피 기업 입장에서 안 팔리는 제품을 계속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래도 에어라면 수요가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나는 미니를 선호하던 사람이었는데 미니에 이어 플러스도 단종되고 에어로 나오는 게 조금 의외이긴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에어는 대단한 인기 몰이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화면은 큰데 가볍다면 분명히 구입을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며 나만 해도 일반 모델보다는 에어를 그리고 프로 모델보다도 에어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미니가 다시 부활할 일은 절대 없을 거 같아서 대안책으로 에어가 궁금하긴 하다. 아마 플러스 모델과 비슷한 가격에 책정이 될 듯하다.  아이폰은 일반 모델도 사실 큰 차이가 없기는 한데 더 가벼운 모델을 찾고 싶은 건 인간의 욕망이다. 게다가 프로 모델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많이 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쓸데없이 고사양이기에 사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나는 거의 15년 넘게 아이폰을 사용 중인데 프로 버전을 한 번도 구입한 적이 없다. 프로는 성능도 그렇지만 일단 카메라 기능이 남다르긴 해서 일반인들도 많이 구입하던 모델 중 하나인데 나는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서 프로를 살 이유나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는 사람이라면 프로를 사는 게 더 좋은 건 사실이다.  이런 나도 에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아마 나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을 거라고 쉽게 짐작을 해 볼 수 있다.  초반에 나온 루머만 해도 에어가 프로 모델보다 더 비싸...

홍콩의 무자비한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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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홍콩 이야기  상상 이상으로 잔인한 홍콩의 월세  어쩌다 보니 홍콩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지금은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으나 나에게 홍콩은 호주 다음으로 제 2의 고향같은 느낌이다. 홍콩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홍콩이라는 도시에 살기 전에는 여행으로도 한 번 안 가 본 도시이지만 그래도 10년이나 살아온 터라 그런지 애정이 가는 건 사실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홍콩하면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홍콩 야경 딤섬 디저트  쇼핑의 천국 정도일 텐데 요즘 들어서는 쇼핑의 천국은 환율 때문에 나락간 지 오래고 그저 괜찮은 여행지 정도로 인식이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이 과거 만큼 홍콩으로 여행을 잘 안 가시는 거 같기는 하다. 환율 영향도 있겠지만 홍콩의 매력이 과거와 비교해 보자면 많이 하락한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내가 사는 10년 동안도 홍콩의 모습이 많이 바뀐 것 역시 사실이다. 내가 이 정도인데 오래 전에 홍콩에 오신 경험이 있다가 최근에 오시면 아마 달라진 모습을 피부로 체감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나는 홍콩에 본사를 둔 직장을 그만두면서 한국으로 돌아온 사례인데 오늘 이야기할 부담스러운 월세 때문에 홍콩을 떠난 건 절대 아니지만 홍콩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 월세 내고 과연 내가 살아 남을 수 있을까를 매일 매일 고민한 것 역시 사실이다.  물론 홍콩도 월세가 저렴한 지역이 있긴 하다. 그러나 당연히 그런 곳은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 인프라가 극악인 수준이다.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려면 어느 정도 생활 기반이 갖추어진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그런 곳은 기본적으로 월세가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100만원은 그냥 넘어간다. 보통 살만한 곳이라면 10평 기준으로 최소 200만원 가까이는 줘야 괜찮은 곳에 살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우리 나라의 강남같은 값이 조금 나가는 지역으로 가면 금방 300만원 이상으로 월세가 치솟...

혼자 살아도 코스트코 자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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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쫀쫀한 세상 이야기  혼자 사는 주제에 나는 왜 코스트코에 그리 자주 가는 걸까 나는 1인 가구다.  하지만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게 바로 코스트코 등록이다.  나도 처음에는 과연 코스트코에 생각만큼 자주 갈까라는 생각이 분명 있었다. 다른 마트와는 달리 연간 회원권을 구입해야 하며 비록 4만원도 안 되는 돈이긴 하지만 물건 사러 가면서 회원 가입을 해야 되는 게 조금 웃기다는 생각마저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4만원도 안 되는 회원권 가격은 조금 말이 안 될 정도로 저렴하긴 하다. 호주에서 잠깐 한국에 들어온 나의 지인은 코스트코 코리아 회원권 가격을 듣고 너무 싸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지금의 가격이 적당하긴 하다.  호주와 미국의 물가를 한국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다들 주지하다시피 코스트코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잘 나간다.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제일 많은 거 같지만 코스트코는 전세계 지점이 다들 괜찮은 매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창고형 매장이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테다. 게다가 유통업이라는 게 원래 따라하기도 쉽고 흉내내기도 어렵지 않은데 신기할 정도로 코스트코는 전세계 어디에도 대항마가 별로 없다. 국내에서도 신세계에서 만든 트레이더스가 있는데 생각만큼 반향이 있지는 않았다.  이건 아마도 예상보다 코스트코의 경영 노하우가 강력하다는 반증이다. 나도 두 군데 모두 방문해 보았는데 어딘가 비슷하긴 하지만 확실히 코스트코가 더 괜찮다. 이건 뭐 매출액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혼자 살면서 과연 코스트코에서 살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코스트코를 돌아다니다 보면 혼자 살아도 살만한 물건들이 정말 많다. 특히 요즘은 많은 대용량 물건들이 1인분씩 소분해서 포장이 되어 있기에 유통기한만 적당하다면 대용량 물건도 1인 가구에게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게다가...

하루 하루가 불안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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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믿는다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항상 선거에서 민주당을 찍긴 하였으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에 눈물을 흘리는 고3 학생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서 윤석열 후보자가 당선이 되었을 때에도 크게 뭐가 없었다.  물론 내가 뽑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게 국민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순진하게 이렇게 정권이 교체되고 하면서 나름의 순기능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순진하고 바보 같았는지 이번 사태를 보고 절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정치 관련 목소리를 내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며 필수적이라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적극적인 토론과 의견 표출 만이 민주주의를 살아 숨쉬게 만든다. 입장이 어떠하건 간에 말이다. 현재 국민의 힘이 얼굴에 철판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걸 보면 나라고 못 할 게 뭐가 있나 싶기도 하다.  상황이 힘겨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만 보면 우리가 원하는 바는 차근 차근 이루어 나가고 있다.  결국 탄핵은 될 거고 체포가 될 것이며 대통령 내외는 감옥에 가는 게 당연한 결과가 될 거라는 걸 아마 본인들도 알고는 있을 거다. 지금까지도 그걸 모른다면 그건 이제 지능의 문제라고 할 만하다.  순간 순간을 보면 힘겨워 보이고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지만 큰 물결에서 보자면 이제 큰 물줄기를 더 이상 막을 수 없다. 민주주의의 태풍이 대한민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이번은 박근혜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박근혜는 그래도 겸허히 국민의 뜻을 받아 들이고 탄핵 과정 안에서는 관여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정치 경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인지 낄낄빠빠를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한 ...